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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의 분류와 성가의 정의
2) 성음악에 대한 규정(공의회문헌)
3) 성가대의 주보성인

 

음악의 분류

음악의 세계는 매우 넓고 다양하지만 이 세계를 종교의 관점에서 분류한다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 음악은 크게 "종교음악"과 "비종교(세속)음악"으로 나눌 수 있고,
- 종교음악은 다시 "그리스도교 교회음악"과 "타종교 음악"으로 나눌 수 있으며,
- 그리스도교 교회음악은 다시 "전례용 음악"과 "비전례용 음악"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종교음악과 교회음악의 큰 틀을 살펴보고, 이 틀 안에서 미사전례에 따르는 전례성가의 정의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기로 한다.

1) 종교음악

넓은 의미로 종교심을 붇돋우기 위한 음악이다. 따라서 종교의 대상인 신에 대한 모든 제사 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세속음악과 대비되는 용어이다. 따라서 성악곡이든 기악곡이든 간에 절대자에 대한 흠숭과 찬미을 드리는 음악은 종교음악이며 그렇지 않은 음악은 세속음악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음악은 범패(梵唄) 또는 어산(魚山)이라고 하며, 재를 올릴 때나 예불 때 한다. 흔히 보고 듣는 염불도 이에 속하는데, 불교에서도 범패를 으뜸 공양으로 친다. 유교에서는 제례악이라고 하는 아악이 있으나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슬람교에서는 음악을 금하고 있다.

종교음악이 가장 활발한 종교는 그리스도교이다. 특히, 가톨릭 교회에서 뜻하는 종교음악은 교회 내에서 행하는 전례의식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 감정(혹은 영감)의 표현에 의한 모든 음악을 나타낸다.

2) 성음악(聖音樂 ㉱ Musica Sacra)

인간의 마음을 성화시킬 수 있는 거룩한 음악을 말한다. 일찍이 가톨릭 교회의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노(㉱ St. Augustinus, 354-430)가 성음악을 정의하면서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음악을 받을 대상이 하느님(㉱ Deus)이어야 하고, 수단은 입으로 하는 노래(㉱ Cantus)이어야 하며, 내용은 찬미(㉱ Laus)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성음악은 거룩한 선율과 리듬으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꼭 전례의식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드리는 노래이므로 성스러워야 하고, 예술성과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3) 교회음악(敎會音樂 ㉱ Musica Sacra)

성음악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넓은 의미로는 모든 종교의 음악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좁은 의미로 그리스도교 음악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에서 미사 또는 예배 때 하느님을 찬미하는 음악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선포된 "거룩한 전례 안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1967) 서문에는 교회음악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교회음악이란 하느님께 예배를 올리는 식전을 위하여 작곡되고 신성과 우량성을 지닌 양식의 음악을 말한다."

교회음악은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히브리음악에서 기원하여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 발전되었다. 다만, 개신교음악은 16세기 이래 독일을 중심으로 회중제창을 중요시하여 가사부터 종래의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바꾸고 쉽고도 경쾌한 찬송가 위주로 전개되어 왔다. (이런 노래를 "코랄"이라고 한다.) 가톨릭 교회음악은 성가대 위주의 전례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년) 이후 전례쇄신의 일환으로 회중제창을 과감히 도입하였고, 나라별로 토착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4) 전례음악(典禮音樂 ㉱ Musica Liturgia)

교회가 법적으로, 공적으로 전례의식 안에 사용하도록 허용하였거나 또는 실제 사용되었던 음악으로서 전례의식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며 공동체의 전례의식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는 음악을 말한다. 따라서 전례음악의 멜로디는 그 성격상 전례의식 속의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노래 불리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즉 전례 말씀에 멜로디의 옷을 입히는 것이며 순수한 음악적 가치보다는 말씀(여기서는 노래말)이 중요시된다. 구체적으로는 미사전례 를 거행하거나 성무일도를 드릴 때에 부르는 노래로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성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음악이다. 전례음악은 옷으로 비유하자면 정장이라 할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품격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성가(聖歌, ㉱ Cantus Sacrus)의 정의

종교의 구분 없이 거룩한 노래를 뜻하나 좁은 의미로 사용할 경우에는 가톨릭 전례에 사용하는 노래, 즉 가톨릭 전례음악을 뜻한다. "찬송가(讚頌歌)"라고 부르기도 하며, 구약의 시편 150곡을 가리키는 "성시(성시, Psalms ㉱ Psalmus)"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시편 이외의 노래나 신약의 시 형태의 노래를 가리키는 "찬가(찬가, ㉱ Canticum)"와 구별한다.

"성가"란 말 뜻 그대로 거룩한 노래이다. 우리 교회의 교부이신 성 아우구스티노께서는 성가를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로 정의한 바 있고, 또한 "성가를 한 번 잘 부르는 것이 기도를 두번 하는 것과 같다."고 성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성가의 정의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 대상과 내용
성가의 대상은 하느님, 또는 하느님과 같은 위격이신 성부, 성자, 성령과 예수님, 성체이시며, 내용은 찬미와 감사이다. 성모님이나 성인을 찬미하는 노래도 성가로 분류된다.

2) 방법과 수단
하느님을 찬미하는 방법과 수단은 악기, 무용, 미술, 건축, 문학작품, 영상매체 등 다양할 수 있으나, 교회의 전통은 성악으로 노래하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악이 도입되고 있지만, 찬미의 기본 방법과 수단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이다.

가톨릭교회와 전례 및 성가에서 상당부분 일치되던 성공회는 성가를 개신교 풍으로 전환했다가 약 10년간 써본 후에 다시 원래의 성가로 되돌아왔다. 동방정교회는 가톨릭보다 전통의 전례와 성가를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성가의 분류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 ㉱ Cantus Gregorianus)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 교회 음악의 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훌륭한 성가이며 가톨릭 교회의 재보로 여겨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음악사에 있어서도 그 뿌리라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이전까지의 흩어진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최초의 성가집 「리베르 안티포나리움」(㉱ Liber Antiphonarium)을 편찬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 (㉱ St. Gregorius I Magnus, 540-604, 재위 590-604, 제64대 교황) 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용 음악으로 단선율로 이루어져 있고 장식적인 멜로디와 유동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 성가이다. 무반주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회에서 성가 중에 으뜸이 되는 노래로서 공식 인정되었고 적극 장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도원이나 신학교, 그리고 일부 교구에서는 특별한 시간을 정하여 그레고리오 성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그리고 교구차원의 성음악연구소에서도 그레고리오 성가는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다성음악(Polyphony, ㉱ Polyphonia) 다성음악(多聲音樂) 은 복음악(複音樂)이라고도 하며, 두 개 이상의 성부(聲部)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어우러지는 음악을 말한다. 다성음악 중에 종교적 내용의 라틴어 가사를 가진 합창곡을 일반적으로 "모텟(Motet)"이라 일컫기도 한다. 서기 9세기경 까지는 단선율인 그레고리오 성가가 보편화되어 있었으나 차츰 복수의 음정간에 어울림이 좋은 화성 개념이 도입되어 한 주제에 여러 개의 선율과 가사가 독립된 성부로 진행되는 다성음악이 9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성가집을 보고 부르는 성가는 한가지 가사를 소프라노가 노래하고 다른 성부는 수직화음으로 받쳐주는 단성음악이다. 이에 비하여 다성음악은 소프라노, 앨토, 테너, 베이스 ( 또는 더 많은 동성) 성부간에 각 성부가 얽히고 설키듯이 엮어가며 절묘한 화성을 이뤄나가는 음악이다.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으므로 신자들의 제창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성음악은 15세기 문예부흥시대를 맞이하여 그 절정을 이룬다. 특히, 로마악파의 팔레스트리나와 빅토리아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전례 목적으로 작곡된 다성음악의 높은 예술성은 종교와 시공을 뛰어 넘어 고전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도시의 성가대에서는 대축일미사나 큰 전례때에 특송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원래는 무반주(아까펠라)로 연주한다. 무반주 합창을 잘 부르면 하늘나라의 천사들의 소리 같다.

국악 성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각국에서는 모국어 미사를 봉헌하면서 전례음악 토착화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으로서 우리 가락과 성가를 접목하는 시도들이 생겼는데, 이문근 신부(1917-1980)의 미사곡(가톨릭성가 320번~324번), 손상오 신부의 미사곡 (310~313번), 그리고 구명림 수녀의 <우리는 목장의 백성이로세>(57번), 김진균의 <주의 백성 모여 오라>(66번)와 <거룩한 어머니>(239번), 원선오 신부의 <좋기도 좋을시고>(416번), 나운영의 <야훼는 나의 목자>(470번), 신귀복의 <풍악을 울려라>(공동체 성가집 150번) 등은 토착화의 좋은 모범으로 꼽힐 수 있다. 특히, 앞에 언급한 두 개의 미사곡은 그레고리오 성가 선법이 한국인의 심성에 어울리는 단음계 구조임에 착안하여 그레고리오 성가 레 선법으로 작곡되어 토착화를 시도한 “한국 미사곡”으로 자리를 잡은 사례이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적 선율에 의한 전례음악 토착화를 시도한 작품들이 발표되었는데, 손상오 신부의 <시편성가>, 이종철 신부의 <전례미사곡 바단조>, <순교자 현양 칸타타>, 최병철의 <천주공경가>, 강수근 신부의 <국악미사곡>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1994년에 김종국 신부의 노력으로 “가톨릭국악실내악단”이 창단됨으로써 한국 전례음악 토착화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와 국악합주단의 출현은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이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가톨릭 교회의 전통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라틴어 텍스트)를 존중하고 그 정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민족 고유의 무속이나 궁중의식, 유교 음악 등으로 혼재되어온 국악을 어떻게 교회음악에 접목시킬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오르간과 같이 성가대와 교중의 개창을 함께 이끌어줄 악기에 대한 문제, 거의 매주 바뀌는 전례 분위기에 맞추어 다양한 미사곡과 성가를 작곡하는 과제 등을 풀어가면서 가톨릭에서 강조하는 보편 타당성이 있는 전례음악이 되도록 체계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음악이 전례음악으로 적합한가의 문제에 대한 척도는 “거룩함”에 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노래를 받으시는 분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례음악 토착화를 위한 체계적인 연구와 지속적인 노력에 대해 교회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와 배려가 요망된다.

연주용 교회음악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회음악으로 작곡된 곡들이 복잡해지면서 결국 교회의 전례 속에서 소화하기는 힘들고 단지 연주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음악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곡으로 바흐의 "나단조미사"와 베토벤의 "장엄미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연주용 교회음악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전례 속에서 쓰이는 곡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하이든의 "넬슨미사", 모차르트의 "대관식미사", 구노의 "체칠리아미사" 등을 들 수 있다.

복음성가
(Gospel Song)
"생활성가"라고도 하며 특수한 목적 - 예를 들면 전교, 집회, 여흥 등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이 형식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19세기 미국에서 발전된 장르로서, 신앙부흥집회 때에 비신자들을 인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절대자인 하느님을 찬미하기보다는 하느님께 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불려지는 경우가 많다. 즉, 듣는 대상이 하느님이 아니라 보통 인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래의 선율이나 리듬도 성가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 많고, 형식면에서도 자연스러운 음의 진행이나 가사 붙임이 아니라 당김음이나 엇박자를 많이 써서 정형화된 틀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되어 있다.

복음성가는 단체활동이난 소모임, 그리고 가정에서 쉽게 배우고 부를 수 있어서 생활의 신앙화나 신앙의 생활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거룩한 전례에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기타 교회 내의 활동과 관련하여 명명되는 성가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젠성가"와 "떼제성가"이다. "젠"은 포콜라레(Focolare)라는 국제 마리아 사업회에서 벌이는 사업 가운데 청소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말하는데, 이 활동에서 널리 불리는 성가를 "젠성가"라 부른다. 또한 떼제공동체 활동에서 부르는 성가를 "떼제성가"라 하는데, 이 성가는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여 곱씹는 형식의 음악이다. 이런 되풀이 과정을 통해 가사의 의미를 화두로 하여 묵상이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명칭들은 성가의 유형이라기 보다는 교회활동에 관련하여 편의상 명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가대에도 헌법이 있는가? 회칙이 있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헌법이라니? 실제로 성가대에도 지켜야 할 헌법이 있다. 공의회에서 규정된 성가대와 성음악에 관한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공의회란 무엇인가? 공의회는 교황이 세계의 모든 주교와 그 이상 급의 성직자들을 소집하여 교회의 안건을 결정하는 회의이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은 교황이 교황거좌에서 내리는 교의에 관한 결정처럼 무류권(잘못될 수 없음)을 가지며, 공의회의 소집으로만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이 규정은 가톨릭 신자로서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역대로 공의회에서 성가에 관한 판결과 규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1960년에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가운데 전례헌장에서는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하여 성음악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의 제6장은 [성음악]이라고 명칭되어 있다. 이 장의 조항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그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




112. 모든 성교회의 전통적 음악은 다른 모든 예술적 표현 방식보다 뛰어나며, 그 가치를 이루 다 평가할 수 없는 재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히 말과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요하고도 불가결한 구성 요소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도 거룩한 교부들도 성가에 대하여 훌륭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현대에 있어서는 성 비오 10세를 비롯한 로마 교황들도 의식에 있어 성음악의 봉사적 임무를 뚜렷이 밝혔다.

그러므로 성음악은, 혹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일치를 초래하며, 혹은 거룩한 의식을 더 성대하게 감싸주면서, 전례 행위와 밀접히 결합하면 할수록 더욱 거룩해질 것이다. 그리고 성교회는 필요한 성질을 갖춘 건전한 예술의 모든 형태에 찬동하며, 또한 그것을 전례에 도입할 것을 허용한다.

성교회의 전통과 법규의 기준과 훈령들을 준수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지향하는 성가의 목적을 고려하면서, 거룩한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음악의 분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진 곡을 종교음악이라 하는데, 이 가운데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기 위해 작곡된 곡을 교회음악이라 부른다. 교회음악에는 전례에 쓰이는 전례음악, 연주용 교회음악, 그리고 전례 외의 신심 행사를 위한 비전례용 음악이 있다. 이 가운데 전례헌장의 기본정신과 규정에 충실한 음악은 전례음악이다.

연주용 교회음악으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헨델의 메시아(Messiah) 같은 곡이 있는데, 의외로 많은 미사곡들이 전례에 합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이 곡들이 성당과 신자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며 연주 시간이 길거나, 그 선율의 속성이 극히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열렸던 트렌트(Trent) 공의회에서는 팔레스트리나(Palestrina)의 작품 가운데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누리던 대중 가곡의 선율을 빌려서 작곡된 여러 미사곡들이 교회 내 행사에 사용될 수 없다는 연주 금지 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비전례용 음악의 대표적인 예로는 복음성가와 생활성가를 들 수 있는데, 성서반 연수 성가집에 있는 대부분의 곡이 이에 속한다. 우리가 쓰는 가톨릭 성가집에도 많은 수의 비전례용 음악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곡들은 전례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례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전례음악은 이 전례헌장의 내용에 충실하며 사용될 전례의식에 합당한 곡들이다. 일찌기 성 비오 10세는 전례의식에 사용되는 노래에 관하여 "노래의 주된 역할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전례문에 합당한 선율을 붙이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음악은 장엄한 전례 안에서 불가결한 부분이다."라고 뚜렷이 밝혔다. 이러한 말과 전례헌장을 토대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전례 안에 짜여진 음악은 고립된 것도 독립한 예술도 아니고 오히려 전례문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의식 안에서 쓰이는 상징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상징은 단순히 인간의 종교적 애정만을 나타내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전례음악은 세 가지 효과를 갖고 있다: 첫째로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며, 둘째로 일치를 초래하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가 전례 의식 안에 현존하기 때문에 의식을 거룩하게 한다. 이를 위해 전례음악은 거룩한 성격과 뛰어난 형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가대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음악의 무수한 재보 중 신자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은 부를 수 없는 곡보다 적다. 그리고 이 가운데 신자들이 알고 있는 곡은 더욱 적다. 그러므로 성가대는 신자들을 교육하는 차원에서의 음악봉사를 해야 하며, 일반 신자들보다 많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한 부분에서도 활동하여야 한다. 특히, 소수와 다수가 주고받으면서 노래하는 부분들은 성가대가 있어야만 올바로 이룰 수 있으며, 작곡자의 깊은 신심이 담긴 곡들을 들려줌으로써 신자들의 종교적 각성과 성화를 도와줄 수 있다.


113. 부제들이 보좌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전례 의식을 노래로 성대히 집전할 때, 그 전례 의식은 더욱 고귀한 외양을 갖춘다.

사용하는 언어에 있어서는 제36조, 미사 성제에 있어서는 제54조, 성사에 있어서는 제63조, 성무일도에 있어서는 제101조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예전에는 성가대원들에게 부제에 맞먹는 권위와 권한을 부여하였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실제로 미사에 있어서 성가대의 위치는 미사 집전 사제 바로 아래였다. 지금의 미사해설자의 기능까지도 원래는 성가대의 몫이었다. 이런 중대성 때문에 역사상 많은 성가대를 미사 집전 사제가 아닌 다른 사제가 직접 지휘 및 지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가대는 집전자의 위치에서 신자들의 위치로 바뀌게 되었다. 공의회 문헌 해설총서 제5권 342쪽을 보면, 성가대는 신자들의 특별한 부분으로 노래 부르기 어려운 부분을 신자들을 대신해 불러 그로써 신자들의 노래를 더욱 아름답게, 장엄하게(112조)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조항에 언급된 언어에 관한 항목은 라틴어 권장의 내용과 필요에 따른 모국어 사용의 허용, 그리고 이에 대한 결정권을 교구장에게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제54조에 보면 "그러나 신자들로 하여금 미사 통상문 중에 그들에게 속하는 부분을 역시 라틴어로도 외우거나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써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나라 교회에서 가장 효과를 보고 있는 라틴어 보급은 성가대의 라틴어 미사곡 봉헌이라는 것이다.


114. 교회음악의 재보는 극진한 배려로 보존되고 육성되어야 한다. 또한 성가대가 부단히 육성되어야 하는 바, 특히 주교좌 성당에서 그렇다. 그와 동시에 주교들과 기타 영혼의 목자들은 노래로 거행되는 어떠한 전례 의식에 있어서든지, 모든 신자들의 무리가 제28조 및 제30조에 규정한 대로 그들에게 속한 부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 돌보아야 한다.


교회음악의 재보를 보존하는 것도 성가대가 수행해야할 의무이다. 이러한 재보의 보존과 육성을 위해서는 이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이런 이유로 성가대는 육성되어야 한다.

미사에 참여하는 교중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성가대가 가지는 3가지 의무는 다음과 같다:
1) 신자들의 노래를 이끌고 돕는 성가대는 신자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장 활발한 부분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집전자나 부제나 시편 독창자의 노래에 응답해, 대화구나 층계송의 응송이나 봉헌이나 연도를 낭송할 때에 나타난다.
2) 성가대는 전례에 일치하도록 하는 부분, 즉 미사 통상문의 노래, 시편과 만과의 노래나 종과의 노래를 신자들과 교송으로 부른다.
3) 성가대는 자신들만으로 다른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신자들에게 너무 어려운 부분을 성가대가 부를 수도 있다. 또 신자들이 노래 부르면서 동작할 경우(미사 행렬의 노래, 즉 입당송, 봉헌송 및 영성체송) 신자들을 대신해 부른다. 경우에 따라서 신자들은 후렴구를 노래하면서 의식에 참여할 수도 있다.



115. 신학교 남녀 수도자들의 수령원과 신학원, 또한 기타 가톨릭 강습소 및 학교에서의 음악 교육과 실습을 중요시해야 한다.

이 교육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교회 음악 교사들은 신중히 훈련받아야 한다. 그 밖에 도움이 된다면 교회 음악을 위한 전문학교 설치를 권장한다. 교회 음악가, 성가대 대원, 특히 어린이 대원들에게 진정한 전례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1967년 지침에서 보면 성가대(24조)나 지도적으로 노래하는 사람(21조)이나 아악기의 반주자(67조)나 작곡자나 성음악의 전문가(61조)에 대하여 전례의 정신을 몸에 배게 하고, 전례문이나 전례에 사용되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여 사제와 더불어 의식을 행하는 봉사자들의 요구를 알도록 호소하고 있다.


116. 성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식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이 성가가 전례 행위(의식)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종류의 교회 음악 특히 다음곡도 제30조에 따라 전례 의식의 정신과 부합하는 한 전례 집전에서 결코 배척되지 않는다.


여기서 언급한 다음곡(多音曲), 즉 "다성음악"은 넓은 의미에서의 한 성부 이상의 노래가 아니고, 성 비오 10세의 자의교서나 비오 12세의 회칙 안에 씌어진 의미, 즉 무반주의 성악곡, 후기 르네상스의 작곡가들 예컨대 팔레스트리나(Palestrina)가 작곡한 곡과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1967년의 지침 20조에는 지역의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 지역에서 성음악의 유산을 사용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하도록 희망하고 있으며, 일반 신자가 충분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성가대만이 다성부로 노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지시한다.


117. 그레고리오 성가집의 표준판은 보완되어야 한다. 그 밖에 성 비오 10세의 개혁 후 출판된 책들에 대한 비평 연구판이 마련되어야 한다. 작은 성당에서 사용하기 위한 간단한 곡조로 된 판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로마식 성음악의 대표적인 것이지만, 이 그레고리오 성가의 규범안을 완성해야 한다.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앙글레 신부는 그 필요를 강조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Kyriale(키리에집 1905), Graduale(그라두알레집, 1907), Antiphonale pro diurnis horis(일중교창성가집, 1912; 제2판, 1919), Officium Nativitatis(성탄절 전례성가집, 1926)를 발행했다. 그러나 성비오 10세의 원리(secundum codicum fidem)에 의해 쇄신된 노래, 즉 Liber Responsorialis(답창집)나 Pontificale Romanum(주교 전례서)이나 Processionarium (행렬용 성가집)이나 Hymnarium(성가집) 등이 아직 발행되어 있지 않다." 1907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연구의 결과, 네우마, 즉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유한 음표에 관해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던 규칙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성음악에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또 네우마의 연구는 가톨릭 학자 사이에도 또 가톨릭 학자가 아닌 경우에도 대단히 진척되고 있으므로 Graduale Romanum(미사 전례서의 그레고리오 성가집)의 비판판을 출판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1905년 로마에서 열린 국제성음악회의는 이 비판판의 출판, 즉 솔렘의 수도자들이 준비한 비판판의 출판을 강력히 희망했다.

1967년 10월 3일 교황청은 Graduale Simplex를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본당에서 1년 중의 미사에 사용하기 위해 개정되고 단순화된 그레고리오 성가집이다. 이 그레고리오 성가집은 예부성성과 전례헌장 실시평의회에서 동시에 인가되었다. 이 새로운 책은 성비오 10세가 시작한 전례 음악 쇄신의 결정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1956년에 예부성성이 시사했듯이 더욱 단순한 선율을 만들려는 노력이 이 성가집의 출판으로 실현된 것이다. 공의회는 단순한 선율을 만드는 일을 인계 받아 이로 인해 신자가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촉진하도록 노력했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에게는 옛날의 선율은 너무나 복잡해서 노래할 수 없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새로운 에는 미사 전례서에 나와 있는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의 새로운 가사가 몇 개 실려 있는데, 이 새로운 가사는 오직 노래할 때만 쓰이고 낭독하는 경우에는 미사 전례서에 나와 있는 본래의 가사만이 사용된다. 이 책에는 또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에 1년 동안 여러 가지 시기(예컨대 대림절, 사순절 등)를 통해 같은 가사와 선율이 있다. 몇몇 일요일에 시기에 따라 같은 가사와 선율로 입당송이나 봉헌송이나 영성체송을 노래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반 신자는 이들의 노래를 더욱 쉽게 익혀 노래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이 새로운 책에는 전례의 옛 관습이 다시 채택되고 있다.


118. 전례 법규의 규정에 따라 신심 행사 중에나 바로 전례 의식 중에라도 신자들의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종교적 대중 가곡을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 총서 p.359-360.

이 조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종교적 대중 가곡"이란 전례 의식 안에서 교중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통상문의 노래와는 별도의 것이다. 종교적 대중 가곡, 즉 보통 성가는 라틴어든 번역이든 교회 안에서 정식으로 결정된 이외의 가사, 즉 교구 혹은 본당에서 만든 가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사는 대부분 그 나라의 말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종류의 노래는 전례 성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각 민족의 혼이나 감정에 맞도록 바꾸어진 것이다.

비오 12세의 생각에 의하면 종교적 대중 가곡(보통 성가)이 교회에 받아들여지는 데는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반영하고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나타내는 것이어야만 한다. 가사는 알기 쉬운 것이어야만 하고 또 선율도 누구나 노래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보통 성가는 짧고 알기 쉬운 것인 동시에, 위엄과 어느 정도의 종교적 장엄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전례 의식 이외의 신심 행사와 거룩한 행사에서는 보통 성가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신심 행사에 "거룩한"이란 형용사가 붙어 있는데, 신심 행사의 의미는 1958년의 지침 15조에 전례 의식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거룩한"이란 형용사가 부과된 것은 신심 행사의 관념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것은 전례헌장 제13조를 보면 분명해진다. 그러나 "장엄 미사 이외의 미사에서 보통 성가는 신자가 노래하지 않는 소수의 방관자로서가 아니고, 영과 소리를 갖고 참여해 사제의 기도와 더불어 기도할 때에 매우 유효하다. 다만 그 경우에 쓰이는 보통 성가는 미사 각 부분과 일치해 있어야 한다." (비오12세 회칙 성음악의 원리, n.59; 64)

김종헌 신부, "전례헌장 제118조의 해설 [종교적 대중가곡?]"

이 118조에 "종교적 대중가곡"이란 표현은 라틴어 "cantus popularis religious"의 자구적인 번역으로서 그 진정한 의미는 "백성들이 부르는 종교 성가"라는 뜻으로서 "모국어로 된 찬미가(vernacular hymnody)"라고 보아야 합니다.

미국에는 책임 있는 여러 출판사들이 제 각기 따로 "공의회 문헌"을 번역하여 판매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 여러 출판사의 전례헌장을 함께 보며 정확한 뜻을 알아들으려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종교 대중가곡"이라고 번역한 "cantus popularis religious" 란 말을 미국의 모든 공의회 문헌 출판사들은 한결같이 "Religious singing by the people"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라틴어의 populus를 아는 사람들은 이 단어가 영어의 "통속적인, 대중적인"이란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한국말로 번역된 "종교적 대중가곡"과 "백성들이 부르는 종교 성가"와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주교회의에서 공의회 문헌을 새로 번역한다는 말이 있으니 좀 더 나은 번역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왕 번역된 "종교적 대중가곡"이란 표현을 이용하시더라도 이 것은 바로 "찬미가"라는 것을 아셔야 할 것이고, 이것을 유행가풍의 노래나 대중가요, 혹은 복음성가나 생활성가로 인식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왜 공의회 문헌에 이런 용어가 들어갔는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전례헌장은 1963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때까지의 교회의 공식 전례용어는 라틴말이었고, 전례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공의회 이전 1958년부터 라틴 교회(로마 가톨릭= 서방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찬미가"(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의 사용을 허락했고 많이 만들어져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찬미가들은 공식 용어인 라틴말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전례 기도문 자체를 노래로 만들어 사용하지는 않았고, 자국어로 된 노래들은 라틴어로 되어 있지 않았기에 전례음악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큰 예식들 사이의 시간들을 메꾸는 노래로만 인식되었고 HYMN이라고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공의회가 끝난 1963년부터 우리는 모국어로 미사의 모든 부분을 성가로 노래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사의 전례문 자체를 노래하는 것, 즉 전례음악이 이제는 각 나라의 자국어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에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전례음악이 준비된 것이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레고리오 성가만 부르고 있다가 갑자기 모국어로 노래를 하도록 허락하니 온 세계교회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지방교회(각 나라를 뜻함)는 차츰 차츰 새로운 전례가 요구하는 음악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때 "모국어로 된 찬미가"를 공의회에서는 다시 한번 장려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제118조에서 문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미사 고유문 중에 몇 가지, 즉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의 기도문 자체를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하는 대신, 자국어로 된 찬미가로 교체하여 노래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1920년대부터 쭉 성가라는 이름으로 이런 모국어로 된 찬미가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허락이 나왔건 말건 전혀 교회음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전례음악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서양말인 라틴어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원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교회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공의회의 이 결정으로 말미암아 유럽의 각 나라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레고리오 성가를 이용하지 않고 자국어로 된 찬미가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언어(모국어)로 불려지는 이런 찬미가(hymns)들의 선율은 우리가 큰 고생하지 않고 쉽게 외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라틴말로 된 찬미가들은 유럽인이 아닌 우리 한국 신자들에게는 그 가사를 이해하기에 무척 힘들지만, 한국말로 된 찬미가들은 자주 이용하다 보면 쉽게 그 가사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노래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찬미가들은 어른들 뿐 아니라 민감한 청소년까지도 찬미가를 자주 노래함으로써 신앙의 진리를 알게 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찬미가들은 일종의 교리 교육으로 알맞다고 교회는 말하고 있습니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께서 발표한 "성음악의 원리" 36-37조에서는 이런 종교적인 찬미가들은 젊은이들에게 순수하고도 품위 있는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집회에서 이런 찬미가를 노래함으로써 신자들의 모임에 장엄함을 더 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가정에서 사용함으로써 경건한 기쁨과 상냥한 위로와 영신적인 진보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교적인 찬미가는 그리스도교 사도직에 큰 도움을 주기에 조심스럽게 육성되며 장려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국어로 쓰여지는 만큼 이런 찬미가들은 각 민족들의 정신과 기질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으며 각 민족의 성격과 사는 장소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교회는 아래와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찬미가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영신적인 결실과 이익을 가져다주려 한다면 이 찬미가들은 가톨릭 신앙의 교의와 전적으로 일치한 가운데 정확하게 이런 교의를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이 성가들은 단순한 가사와 단순한 선율을 사용하여야만 하며, 언어의 폭력이나 쓸데없는(공허한) 말의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합니다. 비록 이런 노래들이 짧고 쉬운 것이지만 종교적인 품위와 진지함을 명백하게 드러내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야 인간 정신의 보다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거룩한 찬가 (sacred canticles)들이 신자들의 감정이나 정신 그리고 열심한 감정을 휘저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예식에서 여러 군중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이런 노래들을 부를 때 신자들의 정신은 더 높은 것으로 고양시키는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노래, 찬미가들은 전례 이외에서 사용할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매혹시키고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그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거룩한 기쁨으로 채워주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효과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특별히 신앙 행렬(Pious procession)이나 성지를 향한 순례 그리고 국가적이나 국제적인 신앙 집회 때에도 발휘되기 때문에 그 사용이 장려됩니다. 위에서와 같이 이런 찬미가들은 가톨릭적인 진리 안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칠 때나 젊은이들을 위한 단체 안에서 그리고 신심 단체들의 모임 때에 특별히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다고 교황 비오 12세는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비오 12세 교황의 "성음악의 원리"는 62-66조에서 많은 효과를 내는 이런 찬미가를 열심히 양육하고 장려하여 모든 신자들이 이런 찬미가들을 더 쉽게 배우고, 암기하고, 정확히 노래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이 문헌은 청소년들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이런 찬미가가 청소년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소녀들에게 종교 교육의 책임을 진 사람들은 이런 찬미가 사용의 올바른 목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또 가톨릭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중요한 일로 위임된 이런 노래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야만 한다고 교황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험으로 이끌고 가는 성질을 가진 멜로디나 종종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가사들과 함께 하는 멜로디는 사라져야 한다. 특별히 젊은이들의 신앙과 신심을 길러주는 품위 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노래를 이런 종류의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성음악의 원리, 62-66조, 비오 12세, 1955).

교회는 이 찬미가들이 신자들의 영적인 이익을 위해 장려되고 많이 사용되기를 권장하면서도 찬미가의 질적인 면에 대해서 상당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세속적인 노래의 사용은 교황 비오 12세께서 잘 예견하신 듯, 당신이 내신 "성음악의 원리"에서 "세속적인 노래들이 [교회 안에서] 소멸될 것을 희망"하셨는데, 그 이유는 "세속적인 선율의 특성 그리고 가사에 종종 나타나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을 가진 노래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위험한 것이고,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신앙과 신심을 증진시키는 품위 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노래를 대체하여 이런 세속 풍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전례헌장 제118조에서는 이 교황의 문헌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사도직에 큰 도움이 되는 이런 "찬미가의 사용은 조심스럽게 육성되고 장려되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번역에서 볼 수 있는 이 표현은 한국어 번역에서는 그냥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찬미가의 많은 이점들을 알고 있으며 그 효력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찬미가의 형식이 품위 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것이어야 하고 가사에 있어서는 가톨릭 교의와 어긋나지 않는 것을 사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Sacred Music"이라는 정기간행물에서 이 해설 기사를 쓴 저자는 "모국어로 된 찬미가의 가장 적절한 사용은 전례 이외의 신심행사(기도모임, 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등)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주어진 서양 문화 현실에서, 가정에서의 훌륭한 가톨릭 찬미가의 사용은 방송 전파를 오염시키는 도덕적인 쓰레기들을 거슬려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19. 어떤 지방, 포교 지방의 국민들은 그들의 종교 생활이나 또는 사회 생활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고유한 음악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교적 감정을 형성하기 위해서나 그들의 특성을 전례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제39조 및 제40조의 정신에 따라 그들의 음악에 적당한 평가와 합당한 자리를 부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에게서 음악적 교양을 습득케 하는 데 있어서는 그들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국민의 전통적 음악을 학교에서나 거룩한 행사에서 장려할 수 있게 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전례 성가에 모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일보 전진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각 민족의 혼을 나타내는 선율과 리듬을 전례문에 보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의 음악이 그와 같이 되는데는 전례헌장이 지적하고 있듯이 "종교생활이나 또는 사회생활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 음악이 전통적으로 오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하다. 20세기 사람들의 혼을 표현함과 동시에, 또 그리스도의 혼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례 의식 안에서 사람들의 혼을 그리스도의 혼과 일치시키는 것이어야만 한다. 전통적인 것이라도 비종교적인 음악은 가톨릭의 의식에 합당한 것이 아니다. 한편 비록 종교적인 음악이라도 그리스도의 정신, 즉 평화와 신뢰와 감사와 사랑의 정신을 결여한 음악은 결코 사용할 수 없다. 교회는 "종교적인 감정을 육성하고" 더욱이 전통적인 요소를 보유하면서 내용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120. 라틴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전통적인 악기로서 크게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음향은 교회 의식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정신은 하느님 및 천상에로 힘차게 들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악기는 제 22조 제 2항, 제 36조 및 제 40조에 의거해서 지역 교회 당국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성스러운 용도에 적합하거나, 혹은 적합할 수 있고 성전의 위엄에 상응하고 또한 참으로 신자들의 신심 계발에 도움이 된다면 전례에 이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1963년 지침 63조를 보면 "악기를 결정하고 이를 사용함에 있어서 각 민족의 마음이나 관습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악기 가운데 상식적으로든 또 그 사용법에 있어서건 세속 음악에만 적당한 악기는 어떠한 전례 의식에서도 또 신심행사와 거룩한 행사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전례 의식 안에서 사용이 인정된 모든 악기를 쓰는 데 있어서는 그것이 의식의 요구를 채우고 의식의 아름다움을 높이며 또 신자를 교화하도록 배려해야만 한다." 또 1967년 지침 67조에는 오르간 및 여러 악기 반주자는 자신의 악기 연주에 능숙할 뿐 아니라 전례의 정신을 알고 이를 몸에 익히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121. 음악가는 그리스도교적 정신에 젖어 교회 음악을 장려하고 그 재보를 늘리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작곡을 하되 참된 교회 특징을 지니고 큰 성가대에서만 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은 성가대에도 알맞으며, 또한 전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

성가의 가사는 가톨릭 교회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경과 전례에서 취해야 한다.


1967년의 지침 45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성사나 준성사의 의식, 전례 주년의 특별 의식을 위해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검열이 필요하다. 가사 검열에 대해서는 주교 회의가 이들 전문회에 위임할 수 있다. 그리고 선율은 주교가 보통 수속으로 이를 승인한다.

새로운 성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조화시켜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전례 의식을 행하는 신자들의 요구이다. 어떤 작품도 "새로운 규칙과 요구"(지침 59조)에 따라 전례 안에서 맡겨진 봉사적 임무를 충분히 다해야 한다. 작곡자는 의식의 참다운 요구를 채우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즉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성가대뿐 아니라 보통 성가대도, 신자들도 노래부르며 전례에 참여할 수 있는 곡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이는 작곡자에게 커다란 문제이다. 뛰어난 성가대를 위해 곡을 만드는 것은 소리의 양과 질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성가대를 위해 곡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용이하다. 실제로 작은 성가대는 4성부로 노래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자는 모든 본당에 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당은 비록 음악적으로는 빈약하더라도 전례 의식면에서는 참으로 풍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의 전례적 가치는 노래하는 사람의 수나 화음의 풍요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참으로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따라 불려지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전례헌장 제121조 3절은 성가의 가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가사가 개인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말씀에 바탕하는 것, 즉 전례문 중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에 바탕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사는 개인적 감정을 나타내서는 안되고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서도 안 된다. "라틴어 가사의 모국어 역, 특히 시편의 모국어 역을 작사하는 데 있어서 선율을 붙이는 전문가는 그 번역이 본래의 라틴문에 충실하고 그러면서도 노래하는 데 적합한 것이 되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지침 54조 A) 그러나 가사에 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뿐 아니라 이를 부르는 사람의 의견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67년의 지침은 새로운 선율을 만드는 데 있어서 신중한 실험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지침 60조) 가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역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임 사제의 지도하에 전례 의식이나 노래에 관해"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지침 5조 E).



끝으로 지침 62조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가톨릭 성가집"의 처음에 나온 편찬 위원회의 지침을 참고로 옮겨 적는다.

62조. 또 주교는 전례 의식에서 사용될 악기에 대해 인가를 준다.

통일 성가집을 위한 작곡 및 선정 기준 (1982년 6월 25일)

1. 가사는 성서와 전례서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2. 가사와 멜로디의 일치를 중시한다.
3. 곡은 교회 공통체가 쉽게 부를 수 있고 성음악으로서의 품위를 갖추어야 한다.
4. 곡은 한국적이며 신심 깊은 신자의 작품을 우선으로 한다.
5. 곡의 형식은 다양하되 주례자와 신자 및 성가대가 교대로 부를 수 있는 곡을 권장한다.



이상의 내용들이 전례헌장 제6장 전문과 이에 관련된 지침 및 해설을 요약한 것이다. 이 규정들을 보면 어떤 이들은 다소 엄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이 공의회가 열리기 전에는 전례의식들이 거의 라틴어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때 당시는 혁명적인 자유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헌은 지금도 우리에게 올바른 성음악 봉사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선곡과 양식에 관한 설명을 명확하게 내려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이 공의회의 정신이 올바로 이해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왜곡되는 것 같다. 분명히 지침에서 숙련된 음악인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쓰여 있으며, 논란 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그들 노동의 대가(보수)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은 찾아볼 수 없나 이를 제대로 시행하는 본당은 많지 않다. 또 지침 63조에 상식적으로든 그 사용법에 있어서건 세속 음악에만 적당한 악기는 어떠한 전례 의식에서도 또 신심 행사와 거룩한 행사에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많은 이들이 이를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세속 악기로 여겨지는 악기, 예를 들어 기타나 색스폰(saxophone) 등의 사용을 주장하거나 활용해 본 사례가 있는 성당들도 있다.

실제로 잠실, 논현, 잠원, 아현, 명동, 신림, 난곡 성당 등의 여러 성당의 청년 활동을 조사해 보았더니, 이 중 기타 반주와 이를 활용한 곡들을 미사 때 사용해본 곳들이 있으며, 결국 신자들의 부정적 시각과 봉사 지원자의 부족으로 보통 6개월, 긴 곳은 1년만에 거의 원 상태로 의식이 복귀되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실행된 본당에서 원래 활동하던 성가대는 그 변화와 이 실험에 대한 반발들로 인하여 해체 직전까지 가거나 심지어 해체되기까지 한 사례도 있다.

전례헌장 전문과 해설을 이곳에 올린 것은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는 봉사자들이 이 헌장의 기본정신과 관련규정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전례의 은총에 더 깊이 참여하고 올바른 전례 봉사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이다.




성가대의 주보 성인은 누구일까? 매주 열심히 "성가대를 위한 기도"를 바친 단원이라면 아마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도의 끝 부분에 "성녀 세실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성녀 세실리아가 성가대(음악)의 주보 성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실리아 성인의 축일은 11월 22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실리아 성인이 음악의 주보 성인이 되었을까? 화가인 라파엘로나 루벤스 등의 그림에서 성인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다. 또 도메니치노는 작곡가와 바이올리니스트로 빌링턴은 가수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실리아가 정말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가수였을까?

그렇지 않다. 본래 세실리아는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가톨릭을 전파하다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아 순교한 사람이다. 그러다가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마침 그 음악원의 자리가 성 세실리아 성당이 위치했던 곳이었기에 그 이름을 따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이라고 명명되었다. 그 후 몇몇 음악가 모임에서도 세실리아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면서 결국 오늘날과 같이 음악의 주보 성인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참고 문헌> : 김건정 저 "교회전례음악", 현석호 역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해설총서 5", 김종헌 "전례헌장 제118조의 해설 [종교적 대중 가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