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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부터 18세기까지를 교회음악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루터의 회중찬송(코랄)은 성가의 대중화를 실현하였고 칼빈(Calvin, John, 1509-1564)의 영향을 받은 교단과 영국 청교도들은 구약성서에 있는 시편가만을 불러야 한다면서 전례의 개혁을 주장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18세기와 19세기에는 세계적인 악성들이 가톨릭 교회음악을 발전시켰다. 독창자와 성가대에 의하여 경건한 성당에서 부르는 곡보다는 일반 무대에 어울리는 연주용 음악(오케스트라에 의한 오라토리오, 오페라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하이든(Haydn, Franz, 1732-1809)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8살 때부터 비엔나의 성 스테파노 성당 성가대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며 "4계"와 "천지창조"는 특히 잘 알려져 있다. 1797년 2월 12일 프란츠 황제의 생일에 발표한 오스트리아 국가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신이여 영예로운 황제 프란츠를 지켜주소서]"는 당시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인하여 불안에 떨던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현악 4중주 "황제, 작품 76-3번"은 바로 이 곡을 인용한 것이다. 천지창조 미사(Schopfungs Messe)는 64세 때부터 3년간에 걸쳐 완성한 곡으로서 에스터하지 공작 부인의 영명 축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작곡하였다고 한다.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1756-1791)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4살 때부터 하프시 코드를 연주했고 5살 때 소나타를 작곡할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순회 연주를 다녔고 36세로 사망할 때까지 1,000여 곡을 작곡하였다. 유명한 미사곡으로 대관식 미사가 있고 레퀴엠([라] Requiem,위령 미사곡)을 작곡하던 중 사망하였다.
모차르트는 연주자의 감정이 개입된 연주를 시도하였다. 이전까지는 일정한 속도로 연주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모차르트는 연주 속도를 조절하여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도록 했다.

베토벤(Beethoven, Ludwig Van,1770-1827)
독일 태생으로 재능과 더불어 의지와 노력으로 대성한 악성이다. 26살 때 귀가 멀기 시작하여 30살에는 거의 절망 상태에 이르렀으나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홉 개의 교향곡 중 제9번 (합창)은 특히 유명하다. 미사곡으로 장엄 미사(Solemes)가 있다.

슈베르트(Schubert, Franz Peter,1797-1828)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가곡의 왕" 칭호를 받은 천재이다. 어려서부터 미성으로 왕실 성당 소년 성가대원이 되었다. 바이올린, 피아노 및 작곡에도 능하였으나 32세로 요절하였다. 그의 독일 미사곡(쏘래 미사)이 가톨릭 성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리스트(Liszt, Franz, 1811-1886)
헝가리 태생으로 "피아노의 왕"이라고 불리며 종교적인 곡은 가톨릭 신비주의에 속한다. 옛날 음악의 특성을 미사에 적합하도록 적용코자 시도하였다.

멘델스존(Mendelssohn, Bartholdy Felix,1809-1847)
독일 태생으로 유복하게 자란 음악가이다. 런던과 라이프치히에서 지휘자와 오르가니스트 및 피아니스트로 활약하였다. 유명한 곡으로는 오라토리오 「엘리아(Elia)」가있다.

브루크너 (Bruckner, Josef Anton,1824-1896)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오르간 주자와 음악 교수(비인 음악원) 역임하였다.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신비주의 악풍을 나타내고 있다. 종교 음악가로는 19세기 최고봉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떼데움(Te Deum), 코랄 미사(ChoralMesse) 등의 미사곡이 있다.

프랑크(Franck, Cesar Auguste,1822-1890)
벨기에 태생으로 불란서에서(파리 음악원) 공부, 일생을 가톨릭 종교 음악가로 살았으며 경건한 미사곡이 많다. 오르간의 명수이고 빠니스 안젤리꾸스(Panis Angelicus, 천사의 양식)는 교회와 세속에서 함께 사랑받는 노래이다.

성녀 체칠리아 협회(Societas Sanctae Caeciliae)
1868년 교회 음악의 부흥을 주창하는 독일 신자들에 의하여 조직되었다. 체칠리아는 가톨릭 교회에서 음악의 주보 성녀로 공경받는 분이며 176년에 시실리에서 순교하였다. 체칠리아는 노래와 악기로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설 때문에 음악 성녀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 협회는 17세기 이후 날로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 음악을 성화시키기 위하여 팔레스트리나 당시의 순수 성악곡을 이상으로 삼았으며 회원들의 창작곡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솔렘 수도원
솔렘(Solesmes,파리 서남방 250킬로 정도에 위치한 작은 읍 이름) 수도원은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성 베드로 수도원을 일컫는다. 1832년 게랑제(Gueranger D. Proper, 수도원장, 1806-1875) 신부는 가장 완벽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현하기 위하여 구라파 전역에 흩어진 옛 악보를 수집하고 깊은 연구를 하였다. 솔렘 수도원의 뽀띠에 신부는 1904년에 교황 비오 10세에 의하여 성가집(그레고리오) 편찬 위원장으로 임명받았다. 이 수도원은 돈 가자르(Don Gajard) 신부와 장 끌레르(Jean Clere) 수사에 의하여 성가를 통한 전교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